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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만족을 위한 방황의 끝
2020-12-11

전도서 2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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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참된 만족을 위한 방황


이 세상의 부실한 낙은 결코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알렉시 드 토크빌). 이것이 전도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진리다. 그는 죽음이 주는 인생의 허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길 원했다. 과연 무엇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참된 만족을 줄 수 있는가?(1절, 3절) 그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일의 성취, 더 많은 소유, 육체적 쾌락이 그것이다.


우선 그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4절). 사업의 확장이 만족을 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었다. 자신을 위해 동산과 과원을 만들어 각종 열매 맺는 나무를 심었다(5절). 자신을 위해 연못을 만들어 삼림에 물을 공급했다(6절).


이것이 아니라면 돈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그 누구보다 많은 가축을 소유했고 엄청난 귀금속을 쌓아둘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7-8절). 이 또한 아니라면, 육체적 쾌락이 답이 될까?


그에게는 자신의 정서를 만족하게 해 줄 사람이 있었다. 또한, 많은 여성과 성적인 만족을 탐닉했다(8절). 그는 참된 만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그가 못 할 일은 없었다(10절).


그러나 그는 그 어디에서도 참된 만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제임스 패커의 말처럼, “쾌락의 종류와 횟수를 늘릴수록 오히려 기쁨은 감소하게 된다. 내적 공허함이 주는 심적 고통은 더욱 심해지며 아무런 만족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 진리를 깨달은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1절).” 그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웃음과 즐거움이 ‘미친 것’이며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2절). 결국, 참된 만족을 위한 탐색은 끝이 없는 방황만 선사할 뿐이다.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시도는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무익한 것이다(11절).


웃을 때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다(잠 14:13).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으로는 우리의 구멍 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만족


인생의 갈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된다. G. K. 체스터턴은 “창녀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갈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


만족을 위한 방황의 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경험한 우주적 갈증으로 인해 우리의 갈증이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당신은 참된 만족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는가? 육체적 즐거움이 지닌 한계를 알면서도 여전히 쾌락을 문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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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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